6월 5일 목장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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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목자님들? 한주간도 주안에서 화이팅하십시오.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키라(4) - 짐을 서로 지라.
본문 - 갈 6: 1- 5절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이 말씀이 무얼 이야기하려고 하나?
감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섯 구절밖에 되지 않는데 그 뜻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을 잘 보십시오.
구절, 구절을 서로 대조해서 잘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서로 앞뒤가 맞지 않는 그런 표현들이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먼저 2절 말씀과 5절 말씀을 대조해 보십시오.
2절을 보면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렇게 되어 있는데 5절에서는 뭐라 되어 있습니까?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그 중심 내용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다음에 1절과 4절의 말씀도 비교해서 한 번 보십시오.
1절에 보면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 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정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 그럽니다.
그런데 4절에 가서는 또 정반대의 이야기를 합니다.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어떻습니까?
바울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 하는지 그 초점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먼저 오늘 성경이 말씀하려고 하는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1절 말씀에 나오는 바로 잡고? 라는 단어의 뜻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로 잡고? 여러분, 이게 무슨 뜻입니까?
예전 성경도 그렇고 이번에 새로 나온 개역 개정판도 그렇고 바로 잡고? 그렇게 일치하게 번역해 놓았습니다.
근데 여러분, 이 번역은 좋은 번역이 아닙니다.
바로 잡고? 그러면 고친다? 틀린 것을 바로 잡는다? 그런 의미로 생각하기가 쉬운데 영어 성경에서 보면 Restore? 회복시킨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2절 말씀에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는 말씀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팔이 부러졌을 때 그 팔을 회복시킨다는 뜻으로 원어의 뜻은 위골된 뼈를 맞춘다! 입니다.
곧 부러진 뼈나 빠진 뼈를 맞춘다는 뜻입니다.
팔이 부러지면 어떻게 합니까? 당연히 석고로 동여매고 고정을 시킵니다.
근데 그렇게 팔을 다치게 되면 그 고통으로 잠을 자지 못합니다.
그리고 잠을 잔다 해도 매우 불편합니다.
사람이 잠을 잘 때 하루 밤 사이에 몇 번을 뒤치락거린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부러진 팔이 건들리게 되면 그럴 때마다 깨곤 합니다.
그토록 불편을 주고 고통을 줍니다.
그래서 그 팔을 잘라버리면 어떨까요? 당장은 좋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친 것은 팔이지만 실제로 불편한 것은 온 몸이니까요.
팔을 자르면 다른 몸이 고생을 하지 않을 것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팔을 자르면 그 팔을 대신할 게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팔이 낫도록 무겁고 불편한 석고를 발라 고정시키고요,
끈을 달아 목에다 걸고 다니는 고통을 감수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몸의 각부분들이 그 짐을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팔이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사는 데 얼마나 불편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그것 뭐 할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겁니다.
우리가 소홀히 하고 괄시하지만 대단히 중요한 지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지체의 결손을 감당하는 것이 큰일 중에 하나인 겁니다.
그래야만 몸이 전체의 기능을 완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 2절은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2절 말씀 같이 읽습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여러분, 여기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법이 무엇일까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해서 우리가 그의 몸으로 부름을 받아 그 머리를 떠받치고 있는데 이것을 통상 교회라! 그럽니다.
그런데 이 교회는 머리 되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12절 이하에 이 부분이 잘 설명됩니다. 12, 13절입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여기 12절에 성도를 온전케 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오늘 본문에 바로 잡으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그렇게 바로 잡는 온전케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13절에 나오는 것과 같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부러진 팔과 같은 지체들을 정상적으로 회복시켜서 온몸의 기능을 정상화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원래 이런 곳입니다. 이것 때문에 이렇게 같이 모여 있는 겁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교회가 이런 모습들이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교회를 크게 보면 한 몸입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신자들이 그 지체가 되어서 각 개인마다 주께서 맡긴 직분이 있고 은사가 다 있습니다.
우리의 몸에서 팔이고 다리가 있어서 그 기능을 발휘하는 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의 거대한 몸을 구성하는 지체로서 각각의 역할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제대로 각각의 위치에서 각각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어떤 한 사람도 필요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마치 우리 몸에서 손톱 발톱까지 다 필요한 것처럼 어느 것 하나 버리거나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의 권면의 말씀으로 하면 우리 모두 서로 짐을 나누어져야 됩니다.
나만 크는 것이 아니라 같은 지체로 부름받은 다른 사람들의 상처를 싸매 주고 서로의 짐을 나누어질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나 자신도 크는 방법이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다리만 크고 팔이 안 자란다면 결국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온몸이라는 하나의 몸이라는 시각에서 자신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지 않는 한?
우리는 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자리에 결코 갈 수가 없습니다.
이 자리는 독특하게도 나 개인으로 가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로 연합해서 가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나오고 나서 3절에 가면 갑자기 다음과 같은 말씀이 진술됩니다.
만일 누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여러분, 왜 갑자기 이런 경고의 말씀이 이어질까요? 바로 앞서서 한 말씀 때문입니다.
우리가 온전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그의 몸으로써 완성을 말합니다.
한 개인이 예를 들자면 팔이 부러졌는데 다리가 난 안 부러졌다? 나는 튼튼하다? 그러니까 나는 합격이다? 한다면 그것은 무얼 모르는 소치라는 것입니다.
정말 교회가 뭔가를 모르는 자라는 겁니다.
그것을 개인적인 차원에서 너는 틀렸고 나는 맞다! 라고 따지는 것을 가리켜 본문에서는 스스로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한다!
이야기하는 셈입니다.
말하자면 교회로 지칭이 되면 우리는 개인이면서도 동시에 이런 의미에서는 한 공동체가 되는 겁니다.
몸이라는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그의 몸으로써의 우리 각자의 책임이 있고 그것을 감당하면서 서로 함께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속이 상하는 것을 감수해야 합니다. 아니 해 봐야 합니다. 남 때문에 어려워 봐야 됩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어야 하고요,
그 사람을 회복시켜 함께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자리에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경지에 가는 동안에 우리는 정말로 말할 수 없이 많이 변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4절 이하에 가면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진술하는 겁니다.
근데 이 구절이 왜 이어서 등장하는가 하면 이 일들은 내가 다른 것으로 대신하는 것으로는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리가 팔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팔을 회복시켜 놓아야 됩니다.
말하자면 각자의 임무는 고유한 것입니다.
그 기능도 고유하고 그래서 그 고유함과 독특함 때문에 다른 것과 비교해서 확인할 필요 없이 대치할 수 없는 직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각각 자기의 짐을 질뿐만 아니라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만 있음을 알게 된다는 겁니다.
교회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이 두 가지, 세 가지 많은 일들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역할 하나를 성실히 잘해 주는 겁니다.
그냥 묵묵히 와서 출석 하나만 잘해 주는 것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릅니다.
가만히 있다 가는 것도 참 대단한 일입니다.
제일 못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하면 아무 역할도 안 하면서 뒤에서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들입니다.
돌아만 다니면서 이것, 저것 간섭하는 사람입니다.
이게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 4절을 보십시오.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여러분, 이 말은 남에게 있는 것이 내 것만 못하다! 그
런 뜻이 아니라 각각 자기의 고유의 일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라는 말입니다.
그것을 잘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딴 것 하지 마시고 자기 짐만이라도 제대로 지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사람이 많을수록 교회나 사회는 튼튼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그런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 된 이 교회를 아름답게 세워 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양 – 이런 교회 되게 하소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키라(4) - 짐을 서로 지라.
본문 - 갈 6: 1- 5절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이 말씀이 무얼 이야기하려고 하나?
감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섯 구절밖에 되지 않는데 그 뜻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을 잘 보십시오.
구절, 구절을 서로 대조해서 잘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서로 앞뒤가 맞지 않는 그런 표현들이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먼저 2절 말씀과 5절 말씀을 대조해 보십시오.
2절을 보면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렇게 되어 있는데 5절에서는 뭐라 되어 있습니까?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그 중심 내용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다음에 1절과 4절의 말씀도 비교해서 한 번 보십시오.
1절에 보면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 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정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 그럽니다.
그런데 4절에 가서는 또 정반대의 이야기를 합니다.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어떻습니까?
바울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 하는지 그 초점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먼저 오늘 성경이 말씀하려고 하는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1절 말씀에 나오는 바로 잡고? 라는 단어의 뜻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로 잡고? 여러분, 이게 무슨 뜻입니까?
예전 성경도 그렇고 이번에 새로 나온 개역 개정판도 그렇고 바로 잡고? 그렇게 일치하게 번역해 놓았습니다.
근데 여러분, 이 번역은 좋은 번역이 아닙니다.
바로 잡고? 그러면 고친다? 틀린 것을 바로 잡는다? 그런 의미로 생각하기가 쉬운데 영어 성경에서 보면 Restore? 회복시킨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2절 말씀에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는 말씀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팔이 부러졌을 때 그 팔을 회복시킨다는 뜻으로 원어의 뜻은 위골된 뼈를 맞춘다! 입니다.
곧 부러진 뼈나 빠진 뼈를 맞춘다는 뜻입니다.
팔이 부러지면 어떻게 합니까? 당연히 석고로 동여매고 고정을 시킵니다.
근데 그렇게 팔을 다치게 되면 그 고통으로 잠을 자지 못합니다.
그리고 잠을 잔다 해도 매우 불편합니다.
사람이 잠을 잘 때 하루 밤 사이에 몇 번을 뒤치락거린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부러진 팔이 건들리게 되면 그럴 때마다 깨곤 합니다.
그토록 불편을 주고 고통을 줍니다.
그래서 그 팔을 잘라버리면 어떨까요? 당장은 좋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친 것은 팔이지만 실제로 불편한 것은 온 몸이니까요.
팔을 자르면 다른 몸이 고생을 하지 않을 것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팔을 자르면 그 팔을 대신할 게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팔이 낫도록 무겁고 불편한 석고를 발라 고정시키고요,
끈을 달아 목에다 걸고 다니는 고통을 감수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몸의 각부분들이 그 짐을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팔이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사는 데 얼마나 불편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그것 뭐 할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겁니다.
우리가 소홀히 하고 괄시하지만 대단히 중요한 지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지체의 결손을 감당하는 것이 큰일 중에 하나인 겁니다.
그래야만 몸이 전체의 기능을 완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 2절은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2절 말씀 같이 읽습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여러분, 여기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법이 무엇일까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해서 우리가 그의 몸으로 부름을 받아 그 머리를 떠받치고 있는데 이것을 통상 교회라! 그럽니다.
그런데 이 교회는 머리 되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12절 이하에 이 부분이 잘 설명됩니다. 12, 13절입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여기 12절에 성도를 온전케 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오늘 본문에 바로 잡으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그렇게 바로 잡는 온전케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13절에 나오는 것과 같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부러진 팔과 같은 지체들을 정상적으로 회복시켜서 온몸의 기능을 정상화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원래 이런 곳입니다. 이것 때문에 이렇게 같이 모여 있는 겁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교회가 이런 모습들이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교회를 크게 보면 한 몸입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신자들이 그 지체가 되어서 각 개인마다 주께서 맡긴 직분이 있고 은사가 다 있습니다.
우리의 몸에서 팔이고 다리가 있어서 그 기능을 발휘하는 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의 거대한 몸을 구성하는 지체로서 각각의 역할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제대로 각각의 위치에서 각각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어떤 한 사람도 필요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마치 우리 몸에서 손톱 발톱까지 다 필요한 것처럼 어느 것 하나 버리거나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의 권면의 말씀으로 하면 우리 모두 서로 짐을 나누어져야 됩니다.
나만 크는 것이 아니라 같은 지체로 부름받은 다른 사람들의 상처를 싸매 주고 서로의 짐을 나누어질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나 자신도 크는 방법이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다리만 크고 팔이 안 자란다면 결국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온몸이라는 하나의 몸이라는 시각에서 자신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지 않는 한?
우리는 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자리에 결코 갈 수가 없습니다.
이 자리는 독특하게도 나 개인으로 가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로 연합해서 가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나오고 나서 3절에 가면 갑자기 다음과 같은 말씀이 진술됩니다.
만일 누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여러분, 왜 갑자기 이런 경고의 말씀이 이어질까요? 바로 앞서서 한 말씀 때문입니다.
우리가 온전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그의 몸으로써 완성을 말합니다.
한 개인이 예를 들자면 팔이 부러졌는데 다리가 난 안 부러졌다? 나는 튼튼하다? 그러니까 나는 합격이다? 한다면 그것은 무얼 모르는 소치라는 것입니다.
정말 교회가 뭔가를 모르는 자라는 겁니다.
그것을 개인적인 차원에서 너는 틀렸고 나는 맞다! 라고 따지는 것을 가리켜 본문에서는 스스로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한다!
이야기하는 셈입니다.
말하자면 교회로 지칭이 되면 우리는 개인이면서도 동시에 이런 의미에서는 한 공동체가 되는 겁니다.
몸이라는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그의 몸으로써의 우리 각자의 책임이 있고 그것을 감당하면서 서로 함께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속이 상하는 것을 감수해야 합니다. 아니 해 봐야 합니다. 남 때문에 어려워 봐야 됩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어야 하고요,
그 사람을 회복시켜 함께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자리에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경지에 가는 동안에 우리는 정말로 말할 수 없이 많이 변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4절 이하에 가면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진술하는 겁니다.
근데 이 구절이 왜 이어서 등장하는가 하면 이 일들은 내가 다른 것으로 대신하는 것으로는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리가 팔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팔을 회복시켜 놓아야 됩니다.
말하자면 각자의 임무는 고유한 것입니다.
그 기능도 고유하고 그래서 그 고유함과 독특함 때문에 다른 것과 비교해서 확인할 필요 없이 대치할 수 없는 직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각각 자기의 짐을 질뿐만 아니라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만 있음을 알게 된다는 겁니다.
교회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이 두 가지, 세 가지 많은 일들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역할 하나를 성실히 잘해 주는 겁니다.
그냥 묵묵히 와서 출석 하나만 잘해 주는 것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릅니다.
가만히 있다 가는 것도 참 대단한 일입니다.
제일 못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하면 아무 역할도 안 하면서 뒤에서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들입니다.
돌아만 다니면서 이것, 저것 간섭하는 사람입니다.
이게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 4절을 보십시오.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여러분, 이 말은 남에게 있는 것이 내 것만 못하다! 그
런 뜻이 아니라 각각 자기의 고유의 일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라는 말입니다.
그것을 잘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딴 것 하지 마시고 자기 짐만이라도 제대로 지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사람이 많을수록 교회나 사회는 튼튼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그런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 된 이 교회를 아름답게 세워 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양 – 이런 교회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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